일상 ~

여름휴가 숙소 에피쏘드(큰딸아이의 글)

코스모스13 2010. 11. 1. 21:18

 

만년필 회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내려고

큰딸아이가 스케치해놓은걸 살짝...

완성된것도 아닌데 내가 슬쩍했다

블로그에 안 올린다 해놓고..

상세하게 써놓은것 몇줄씩 정리하고 수정해서 원고지 10여장으로 줄여서 낸다고 ...ㅎㅎ

마감이 임박하여 직접 서울 청담동까지 가서 내고왔다

녀석이 처음으로 시도해보는 공모전

대학생들만 공모전에 응모할 수 있다고 했다

연습삼아 한다고 했는데 좋은 성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글쎄..

 

 

 

 

 

 

 


 

 

 

유난히도 더웠던 7월의 어느날 밤.

컴맹인 우리 아빠가 컴퓨터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며 나를 불렀다.

인터넷으로 시답잖은 유머를 보며 썰렁함을 만끽하고 있던 나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했고,

곧 아빠의 폭탄선언이 이어졌다.

"올여름 휴가는 강원도로 갈 꺼야."

나는 반색하며 되물었다.

"진짜?"!!

 진짜로 강원도?!!"

"응"

난 '올레'를 외치며 아빠와 함께 좋은 휴가지탐색에 들어갔다.

사실, 내 머릿속엔 '여름휴가'하면 동해요, '여름바다'해도 동해라는 생각이 빼곡이 들어차있었지만,

해마다 거리를 이유로 서해안으로 피서를 떠나는 바람에 매번 적잖은 아쉬움이 있었다.

 

서해안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은 마치 학창시절 소풍갈 때 학교근처로 간다고 하면 몸서리치며

싫어하는것과 비슷한 이치랄가? 뭐 그런 거다.

그런데 이번 여름 휴가엔 무려 설악산, 강원도인 것이다.

 

여행경로는 대충 정해졌고, 숙박시설을 결정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는데, 우리가 인터넷으로 찾아낸 곳이

의외로 가격도 저렴하고 해수욕장 근처에 있어서 바로 그곳으로 결정 예약하였다.

이 결정이 화근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모른채, 우린 성수기에 숙소를 싸게 잡았다며 기뻐했다.

 

우리가족은 7월31일 새벽 4시에 출발하였다.

하지만 보물찾기하듯 곳곳에 숨어있는 휴게소를 찾아 들려서 그리 지루하지 않게 도착지까지 갈 수 있었다.

인터넷으로 예약해두었던 민박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사진과 너무나도 다른 숙박시설의 모습에 우리가족은 미친 사람들처럼 웃어댔다

사진 속 민박집의 모습은 한옥 집을 기반으로 한, 깔끔하고 고풍스러운 풍채를 하고 있었으나,

우리앞에 펼쳐진 민박집은 실로 볼품없기 짝이 없었다.

사진속 민박집은 주인집이었던거다.

 

"방을 좀 덜 치우긴 했는데, 그래도 괜찮죠?"

"네~ 하하...."

괜찮냐는 주인아저씨의 말에

'아니요, 괜찮지 않아요.',

'왜 사진은 주인집을 찍으셨나요.'

등등의 말이 목구멍 기도 끝까지 차올랐으나, 간신이 억누르고 어색하게 하하 웃었다.

 

안타까운 숙소를 뒤로한 채, 우리는 해수욕부터 즐기기로 했다.

역시 동해는 예상대로 끝내주었다.

수평으로 뻗어있는 바다와 고운 모래, 그리고 차가운 물!

정말이지 짜증나게 더웠던 올해 여름을 그야말로 한방에 날려주는 듯 짜릿한 느낌이었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가운 감촉에 우리가족은 신나게 해수욕을 즐겼다.

해수욕후, 숙소로  돌아온 우리가족은 샤워를 하고 저녁만찬으로 삽겹살을 구웠다.

 

우리의 사랑스러운 숙소는 방안에  에어컨이 없었고, 창문도 매우 작은 거 딱 하나였다.

삼겹살을 쩝쩝거리며 먹을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다 먹고 치울때가 문제였다.

눅눅한 공기와 깝깝한 고기냄새...무엇보다 미끌미끌 거리는 바닥.

치워도 치워도 냄새는 잘 빠지지 않았고, 설상가상으로 열대야까지 합세하여 벽에 붙어있는 선풍기를 돌리고 돌려도

방안 공기는 결코 시원해지지 않았다.

40분가량을 방바닥이 구멍 나도록 걸레질을 하던 아빠는 포기한 듯 체념한 표정으로 그만

"자자!~" 고 했다.

 

방안의 공기는 푹푹 찌는듯이 더웠고, 숨 쉴때마다 삼결살 냄새가 났다.

잠은 오지 않았다.

조심스레 실눈을 뜨고 옆을 보니 다들 눈을 말동말똥 뜨고 땀을 뻘뻘 흘리며 억지로 잠을 청하려 애쓰고 있었다.

시계를 보지 않아 몇 시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어수룩한 새벽공기가 코끝에 살짝 닿았을때 아빠가 나지막이 말씀하셨다.

"오늘만 자고 내일은 집가서 자자."

"...."

다들 '응'이나, '그래'같은 대답을 하진 않았지만, 서로 알고 있었다.

숙소에서는 하룻밤을 더 버티기 힘들다는 것을..

  

다음날 아침.

탁자에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 식구들의 모습은 웬만한 TV 의 개그맨들보다 더 웃겼다.

퉁퉁 부은 눈 .. 얼굴...그리고..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각자 짐을 챙기기 시작했고, 숙소를 치웠다.

마지막 짐을 막 차에 실었을 때 주인집내외가 나왔다.

 

엄마가 어색하게 웃으며 사정이 생겨서 하루 일찍 숙소를 나가야겠다고 말하자, 주인집 아주머니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말하며 하루치 숙박비를 챙겨주셨다.

"이거 다 주시는 거예요?"

"네 ~ 하루 일찍 나가시는 거니까 돌려드려야죠."

주인집 부부는 한두번 겪어본것이 아닌듯 자연스러웠다

밤중에 옆방도 이미 방이 비어 있었다

 

주인집 아주머니와 아저씨의 서글서글한 말투에 어쩐지 미안해졌다.

죄송하다는 엄마의 말에도 주인집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손사례를 치며 연신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돌아오는길 역시 차가 막혔지만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

 

비록 하루지만  그 숙소를 겪고나니 우리 집은 콘도쯤으로 생각되었다.

집에 도착하니, 고3 수험생이라 집안에서 공부를 하고 있던 남동생이 숙소가 대박이라는 내말에 배가 찢어져라 깔깔댔다.

몇달이 지난 지금도 그 숙소얘기는 가끔 화젯거리가 된다.

집안분위기가 무거울 때도, 그 얘기를 꺼내면 다들 피식거리며 웃는다.

 

그땐 그렇게 싫었던 그 숙소가 이젠 정겹다.

사람은 과거의 일을 미화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던데 이것도 다 그런 걸까?

"이번 휴가 또 거기로 갈래??"

 

또 다시 내년 여름휴가씨즌이 다가오면 이렇게 말해봐야겠다.

가족들의 표정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벌써부터 웃음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