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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작품 3편

코스모스13 2013. 7. 4. 20:22

 

 

 

 

 

 

 

 

 

 

 

다시 나에게 쓰는 편지 / 이정록

 

 

콩나물은

허공에 기둥하나 밀어 올리다가

쇠기 전에 머리통을 버린다

 

참 좋다

쓰라린 새벽

꽃도 열매도 없는 기둥들이

제몸을 우려내어

맑은 국물이 된다는 것

 

좋다 참

좋은 끝장이다.

 

 

더딘 사랑 /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말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콩나물 / 이정록


                            

작은 양손을

머리통 속에 디밀어 넣은 동승들

헛발 위에서의 저 숭엄한 합장

맨머리에 폭포수를 맞으며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까닭은

밖으로 나아갈 싹에게

빠른 길을 내주기 위해서다

 

머리를 숙이는 일이

어찌 사람만의 일이겠는가

 

작은 손에 파란 핏줄이 돋을 때까지

외발로 서 있으리라 끝내는 지붕이며

주춧돌 다 날려버리고, 스스로

다비식의 젖은 장작이 될

저 빼곡한 법당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