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에게 쓰는 편지 / 이정록
콩나물은 허공에 기둥하나 밀어 올리다가 쇠기 전에 머리통을 버린다
참 좋다 쓰라린 새벽 꽃도 열매도 없는 기둥들이 제몸을 우려내어 맑은 국물이 된다는 것
좋다 참 좋은 끝장이다.
더딘 사랑 / 이정록 돌부처는 눈 한번 감았다 뜨면 모래무덤이 된다 눈 깜짝할 사이도 없다 그대여 모든 게 순간이었다고 말하지 말라 달은 윙크 한번 하는 데 한 달이나 걸린다.
콩나물 / 이정록 작은 양손을 머리통 속에 디밀어 넣은 동승들 헛발 위에서의 저 숭엄한 합장 맨머리에 폭포수를 맞으며 모두 고개를 숙이고 있는 까닭은 밖으로 나아갈 싹에게 빠른 길을 내주기 위해서다
머리를 숙이는 일이 어찌 사람만의 일이겠는가
작은 손에 파란 핏줄이 돋을 때까지 외발로 서 있으리라 끝내는 지붕이며 주춧돌 다 날려버리고, 스스로 다비식의 젖은 장작이 될 저 빼곡한 법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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